가끔, 아주 가끔
환경문제를 이슈로 놓고
해법과 접근에 대한 견해차로 논쟁을 버리려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상황에 부딪치면 질문을 하고 싶지만 실제로 해본적은 없다.
그 질문은 '죽을 것이냐 살 것이냐'에 해법의 차이가 있느냐이다.
환경문제는 '같이 죽는'문제다. 즉, 인류의 공멸 이야기다.
여기에 해법은 단 하나'살아야 한다'이다.
현실에 부딪치면 늘 새로운 문제에 봉착되고
순간의 안락과 순간의 이익에 눈이 멀게 되는 것은 이해할만 하다. (나도 그러니)
하지만 우리가 어떤 환경문제를 놓고 이야기할때만큼은
지식의 차이, 관점의 차이, 입장의 차이를 떼고
'어떻게 하면 살수 있는지' 순수한 답을 찾으려 노력해야 한다.
'왜'라는 질문과 '무엇을'이란 질문은 더 이상 효력이 없다.
'어떻게'만이 살길이다. 그리고 어떻게에는 늘 정답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정답은 늘 불편한 정답이다.
그래서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사람들은 논쟁을 제기하기도 하고
다른 정답을 찾아 합리화 시키려하기도 하고,
때론 기피하거나 화를 내는 등 감정적 행동으로 대응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그 불편한 정답이 맞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은 논리의 싸움도 아니고, 시간과 공간의 경쟁도 아니다.
그 어떤 헤게모니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에게 닥치면 비로소 그 정답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원전사태로 인해 야기된
자연에너지의 문제는 너무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결국, 모두 원자력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자연에너지가 좋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상황까지 왔다는 것은
지위고하를 떠나 인류가, 우리 스스로가 유아적 발상에 여전히 머물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원전 사태에 가장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한국이
원전에 대한 아무런 조치가 없는 것, 입장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 소화가 잘 안된다. 소고기류를 먹으면 특히 그렇다.
소화가 잘 안될 때마다 평소에 건강을 잘 챙겨야 하는데...
먹는걸 잘 가려먹어야 하는데... 꼭꼭 씹어 먹어야 하는데...
늘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후회하기만 할뿐 실천은 늘 어렵다.
개인적 건강을 위한 실천이 이렇게 어려워서
공공의 건강은 위한 실천도 이렇게 어려운가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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